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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48話’

중앙선 건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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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건설신문
기사입력 2020/07/09 [11:56]

▲ 중앙선 지도                   © 매일건설신문

 

중앙선은 처음부터 청량리~경주 간 철도노선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최초의 시작은 대구~동래 간 및 경주~포항 간과 울산~장생포 간 철도부설을 목표로 1915년 설립한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가 1917년 2월 착공하여 1918년11월 대구~서악 간에 이어 1919년 포항, 1921년 울산까지 협궤철도를 개통시킨 경동선(慶東線)이 중앙선의 시작이었다 할 수 있으며, 또한 조선총독부는 영천~청량리 간 358.6㎞의 내륙종관 중앙선 철도건설을 검토한바 있고, 철도국기사가  중앙선부설을 위한 실측을 하였다는 기사가 1935년10월 1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 

 

1936년 4월22일자 동아일보에 확정 발표된 중앙선철도건설계획은 조선중앙부의 산업개발과 일본·만주·중국 간 연락운수의 편리를 위하여 비교적 수해(水害)가 적고 군사적으로도 유리한 노선으로 부산~울산~경주 간은 기설 경부선과 평행하고, 영천에서 분기하여 의성, 단양, 원주, 양평을 경유하여 경성의 교외인 청량리에서 기설 경부선을 경유하여 경성에 도착할 수 있는 부산~경성 간 276마일의 철도건설에 총 경비 1억5천만 원이 소요될 것으로 계상하고, 특별의회를 통해 공사착수 첫해 예산 1천5백 만 원을 책정하였다.

 

1936년11월 3일 청량리와 12월18일 영천에서 각각 착공하였으며, 1938년 7월 사철인 경동선 일부 구간을 국유화하여 중앙선에 포함시켰다. 한편 1938년 5월 1일부터 영등포역을 남경성역으로, 청량리역은 동경성(東京城)역으로 역명을 변경하였으며, 중앙선이라는 노선명칭은 1909년 부설된 일본 도쿄~나고야 간 츄오선(中央線)과 같아 이를 피하기 위하여 경성(京城)과 경주(慶州)의 첫 자를 딴 경경선(京慶線)으로 변경하였다.(1938.11. 26일 동아일보), 같은 해 12월 1일 경동선 영천~경주 구간과 건설이 완료된 우보~영천 구간을 통합하여 이 구간을 경경남부선(京慶南部線)이라 하였고, 1939년 4월 1일 개통된 청량리~양평 구간을 경경북부선(京慶北部線)이라 하였고, 1939년 6월 1일 영천~경주 간의 협궤(762㎜) 선로를 1,435㎜의 표준궤 구간으로 개설하였다.

 

▲ 경경선(중앙선) 전통기념비              © 매일건설신문

 

1940년 3월 1일 안동~우보 구간 건설이 완료됨에 따라 경경남부선은 안동~경주까지 연장되었고, 경경북부선은 1940년 4월 1일 양평~원주 구간 건설이 완료되어 청량리~원주로 구간이 연장되었으며, 5월에는 소백산 죽령터널이 준공되었고, 1941년 7월 1일 원주~제천 구간과 영주~안동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이 두 노선을 통합하여 본래의 노선명인 경경선(京慶線)으로 복원하였다. 1942년 2월 7일 마지막 남은 제천~영주 간 노선의 남‧북 간 선로 최종접속으로 개통된 지점(구 단양역 부근)에 기념비(京慶線全通之地)를 세웠으며, 1942년 4월 1일 경주~동경성 간 전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동경성역은 1942년 6월 1일 본래의 명칭인 청량리역으로 환원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경선으로 불렸던 노선 명칭은 1948년 1월 중앙본선으로 환원되었으며(1948. 01.22일 경향신문), 그 후 1985년 충주댐건설에 따라 수몰되는 중앙선 도담~죽령 간의 선로이설(1985.12.30.일 준공)에 대비하여 경경선(중앙선) 전통기념비는 1985년11월 7일 단성역 쪽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49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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